어찌된 일인지 체중이 늘고 있습니다. 갑자기 늘어버린 체중에 뱃살까지 늘어 맞는 옷이 없습니다. 친구들은 한결같이 술살이라고 하고 운동부족이라고도 말합니다. 배가 나오는 것은 만병의 근원이니까 조심하라고 말합니다. 늦게 배운 막술도 문제려니와 운동 부족은 분명한 사실이군요.  

몸에 맞는 바지가 없어 결국은 옷 수선가게에 들렀습니다. 바지 뒷부분에 늘이고 줄일 수 있는 공간이 있더군요. 주인 아저씨는 허리를 재보더니 어떻게 이런 옷을 입고 있었느냐며 최대로 늘일 만큼 늘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동행한 아내가 내심 흡족해 합니다. 크지 않은 체구이므로 조금씩 체중이 불어나는 남편의 모습이 좋다고 말합니다. 왜 좋다고 말하는지 알 것 같기도 합니다만, 아무튼 여자들에게 남자는 작은 것보다는 큰 것이 좋은 모양입니다. 

일요일 오전, 여름 바지 두 개를 맡겼습니다. 당장 입을 옷이 마땅치 않아 당일 오후까지 좀 수선해달라고 부탁을 했지요. 주인 아저씨는 밤 8시면 문을 닫으니까 그때까지 와 달라고 했습니다. 다른 일을 제쳐 놓고 해주신다는 말씀까지 얹어주셔서 꼭 그러겠노라 말씀드리고 아내와 저는 옷 수선가게를 나왔지요.  

모처럼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을 보내고 나서 저녁 무렵이 되자 가까이 사시는 어머니께서 호출입니다. 상추랑 열무랑 있으니 가져가라는 말씀이셨지요. 칠순되신 어머니가 큰집 부근 공터를 닦아 운동 삼아 지은 소출인데, 여간 고소하고 맛난 것이 아니랍니다. 겸사겸사 큰집에 들러 노니는 사이 밤 아홉 시를 훌쩍 넘기고 말았습니다.  

"이런이런, 여덟 시까지 옷 찾으러 오라고 했는데 어쩐디야? 내일 당장 입고 갈 바지가 문제구만, 또 쫄리는 바지 입고 가야 되것네."

"에이, 그래두 수선가게에 한 번 가봅시다."

"에이, 이 사람아, 여덟 시에 문 닫는데, 지금이 벌써 아홉 시 반여. 그냥 내일은 생활한복 입고 가지 뭐."

"아, 그래도 속는 셈치고 한 번 갔다 오자니까요." 

워낙 쫄린 바지를 입고 다녔던 터라, 편한 바지 입고 싶은 마음을 담아 저는 아내의 말대로 속는 셈치고 수선가게로 향했습니다.  

모퉁이를 지나 가게 앞에 다다르니, 아니 글쎄 주인 아저씨가 가게 앞에 의자를 놓고 앉아 계시는 겁니다. 놀라움과 반가움에 인사를 드렸지요.  

"아니, 아저씨, 제 옷 때문에 혹시 기다리셨나요?"

"아믄유. 오늘 여덟 시까지 오시기로 한 분이면 내일 당장 입어야 할 옷일 틴디 지가 문 닫고 가버려봐유. 열 시까장 지다릴라구 했던 참유." 

"세상에, 세상에, 아이구, 죄송합니다. 제 바지 때문에 댁에도 못 들어가시고 이렇게 기다려주시다니, 아이구, 감사합니다." 

아저씨는 사다리꼴 모양으로 이쁘게 접어놓은 바지 두 개를 내어주면서 "늘인 표시 하나도 안 나게 잘 되었구만유"라는 말씀까지 해 주셨습니다. 

흡족한 마음에 거듭 감사의 인사를 마치고 나오려는데, 수선가게 안에 몇 개의 맞춤옷들이 걸려 있어 물었습니다. 

"아차, 아저씨, 직접 옷도 만드시나요?"

"아, 그럼유, 지가 이래뵈도 양복쟁이로 먹고 산 사람이유."

"아, 그러세요. 이 옷 참 괜찮아 보이는데 이 스타일로 한 벌 할랍니다." 

아내와 저는 옥신각신 끝에 색상을 정하고 '마'라는 옷감으로 아래위 한 벌로 된 옷을 맞췄습니다. 아저씨는 이런 옷은 신사들이 입는 옷이라며 제 몸을 줄자로 이리저리 잘라 종이 양식에 기입하였습니다.  

"여보, 색깔 다른 걸로 한 벌 더 합시다." 

아내는 알고 있었습니다. '이 양반이 분명 오버할 거'라는 것을. 아내의 암묵적 동조 속에 파란색 한 벌과 베이지색 한 벌, 도합 두 벌을 맞췄습니다. 

여덟 시에 문을 닫아야 할 수선가게 주인 아저씨가 한 사람을 위해 아홉 시 반까지 기다리는 마음, 주인 아저씨의 절뚝거리는 다리 장애는 이미 장애가 아니었습니다. 살아오면서 수없이 많은 약속들, 수없이 많은 기다림들을 밥먹듯 어기고 간과했던 지난 시절이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오늘 아침, 수선가게 아저씨가 만들어주신 새 옷을 입었습니다. 보는 이들이 멋있다고들 합니다. 저는 아저씨의 말씀대로 신사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