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비를 바라보며


장대비가 내릴 때면,
교과서를 덮고 학생들에게 소감을 말하게 합니다.

"저 비를 보면 뭐가 생각 나나요?"
아주 짧게 자기 느낌을 말해 보자고 하는 거지요.

학생들은 말합니다.

"카 센터 힘들겠어요!"
"우산 장수 대박 나겠어요!"
"연인과 젖고 싶어요!" 등등

우리가 흔하게 생각할 수 있는 것부터
가끔은 창의성 있는 대답까지
학생들의 느낌은 다양했습니다.

그러다가
학급에서 제일 떠들고 문제아로 인식된 철이가
발표할 차례였습니다.

철이는 아주 낮은 목소리로
"저 장대비를 보면서 아버지를 생각했어요!"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학급 아이들이 조용했습니다.

나도 놀라 물었습니다.

"왜지??"

철이는 대답했습니다.

"아버지는 분명 저 비를 맞으며 논에 나가 물꼬를 트고 계실 테니까요."

그러자 교실 분위기는 더 숙연해졌고,
철이는 그 날 이후로
말 없이 공부에만 전념하기 시작했습니다.

대학 진학을 포기할 것처럼 생활했던 철이는
그 날 그 발표를 계기로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하고 있었습니다.

누구나 살면서
변하는 계기가 있고,
 발전하는 동력이 있습니다.

교직 24년째를 맞으며
엊그제 내리는 장대비를 보며
20년 전 그날이 생각났습니다.


- Photo & Essay by 박병춘(5회, 모교 국어 교사) -